| 특집 - 따뜻한 밥 한 공기 |
그건 사랑이었네
부모님 집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어젯밤 모임에 갔다가 취해서 들어온 나를 위해 어머니가 북엇국을 끓이셨나 봅니다. 밥상에 올라온 북엇국을 한술 떠 입안에 넣었습니다. 부드럽게 씹히는 북어와 시원한 국물이 입맛에 맞았습니다. “북어조림 좀 해줘! 오랜 만에 먹고 싶네!” 어머니는 뜬금 없다고 하시면서도 환하게 웃었습니다.
전라도에서 시집온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아 언제나 맛깔 나는 반찬을 해주셨습니다. 그중에서 나는 북어 조림을 가장 좋아합니다. 어머니가 짭조름하게 간이 밴 북어를 쭉쭉 찢어서 내 밥숟가락에 올려주시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북어살은 모두 내게 주고 머리 만드셨습니다. 물고기는 머리가 더 맛있다는 말이 생각나 “나도 그거 먹고 싶어.”라고 졸랐지만, 북어 머리 대신 돌아온 것은 “몸통이나 마저 먹어.”라는 말뿐이었습니다. 나는 금세 토라져 “정말 이러기야! 나중에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북어 머리만 사올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내가 객지생활하는 동안 어느덧 강산이 한번 변했습니다. 하루는 친구 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반찬으로 북어조림이 나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북어 머리를 집어 입 안으로 가져가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너도 북어 머리 좋아하는구나. 우리 어머니랑 똑같네.” 옆을 보니 친구 어머니도 북어 머리를 집으셨습니다.
사실 북어 머리가 얼마나 맛있겠습니까? 생선 머리뼈에 붙은 살을 발라내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요? 자식 입 안에 고기 한 점 더 넣어주시려던 어머니 마음을 말입니다.
한번은 선물받은 북어 한 꾸러미를 시골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어머니가 물으셨습니다. “그 북어 몸통이랑 꼬리도 붙어 있냐?” “당연하지. 근데 왜?” “네가 북어머리만 가져온 줄 알고.” 어머니의 장난이었지만 적잖이 놀랐습니다. 어린 시절 무심코 내뱉은 말을 어머니가 여태 기억하셔서요. 철없는 아들 말을 가볍게 듣지 않으셨나 봅니다.
나는 그날 저녁 북어 조림을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다 큰아들이 길 잃을 리 없는데도 어머니는 동네 입구까지 배웅하셨습니다. 변함없는 요리 솜씨처럼, 한결같은 사랑을 받아서인지 고향집에서 어머니의 밥상을 받고 돌아오는 날이면, 거친 세상살이에 지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김재국 님|전북 전주시
_ 이 글은 좋은 생각2월호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